교실10년사
생명을 살리는 공학, 의공학교실
회고록
회고사

가톨릭대 의공학교실 개설 10년을 돌아보며...
의공학교실은 1997년 3월 1일 개설되어 어느덧 10년이 경과되었습니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변하듯이 10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결심과 각오로 의공학 핵심분야의 개척과 도약이 절실히 요망되는 현 시점에서 본인이 교실 10주년 기념집 회고사를 기술하게 되어 무한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고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노력은 고대로부터 금년 2007년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에 걸쳐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이와 더불어 의과학분야는 눈부시게 발달되었습니다. 19세기말 의공학 분야의 장비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3D-4D 디지털화 및 고속 원격진료 화상정보시스템 등이 혁신적으로 개발되었고, 이의 활용으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에 대해서 정밀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의과학계에 첨단 의료장비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의공학자들로 하여금 혁신적인 최첨단 의료장비를 연구 개발해 주기를 요구하고 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한 대의명분으로 본 교실이 탄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본 의공학교실은 향후 최첨단 의과학 및 의공학분야를 개척하여 국내 의학 역사상 일류를 지향하는 가톨릭대학교의 혁신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큰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본 기념집은 교실창설 이래 10년 동안 의공학교실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집대성한 내용으로 이를 보는 후진들 마다 자부심을 갖게 하고 더욱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귀감이 되고, 아울러 본 대학의 무궁한 발전을 도모하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보건향상에 최첨단 의료시혜를 베풀 수 있는 초석이 되어주길 희망합니다. 끝으로 10년 전, 의공학교실이 탄생하는 과정에 많은 충고와 격려 및 지도를 아끼지 않으신 당시 이성만 의료원장 신부님과 김부성 의무부총장님, 김승조 가톨릭의과학연구원장님, 학내 교수님들, 학외 추성실 교수님, 민병구 교수님, 한국의학물리학회 및 대한자기공명의과학회 회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경섭

가톨릭대 의공학교실 개설 10년을 돌아보며...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이 탄생한지도 어느덧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 전 의공학교실을 창설하신 신경섭 명예교수님, 의공학교실 교수님들, 그리고 교실 동문들과 함께 지난 10년을 회고하면서 함께 자리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1997년 3월 1월부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내에 의공학교실이 설립되었고 같은 시기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가톨릭의과학원내 생체의공학연구소, 자기공명연구실이 설립되었으며, 가톨릭대학원내 의과학협동과정이 개설되어 독자적이고 차별성있는 교육과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가톨릭대학교 및 국내 의공학분야의 발전에 기여를 해왔습니다. 의학과 공학을 접목시킨 의공학분야의 필요성 및 성장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오신 신경섭 교수님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 1997년 당시 이성만 의료원장님, 김부성 의무부총장님을 비롯한 의료원 보직자분들과 김승조 가톨릭의과학원장님의 기대에 힘입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에도 현 최영식 의료원장님과 남궁성은 의무부총장님의 이해와 뒷받침으로 더욱 빠른 발전을 해왔습니다. 이러한 발전은 의공학교실 설립 전, 현 교원들이 방사선과학교실에 근무하면서 병원에서의 역할을 이해하고 방사선 응용기술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이 의공학교실의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도 그 당시 같은 교실에서 근무하였던 교수님들과 직원들과의 좋은 추억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가톨릭대학교와 인연을 맺게 해주신 박용휘 명예교수님과 항상 따뜻하게 동료처럼 잘 대해주신 윤세철 교수님, 정수교 교수님께도 깊이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주변에서 의공학교실의 정체성 및 필요성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 교실원이 하나가 되어 노력해왔고, 그 결과, 단기 및 중장기 25년 의공학교실 발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고,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었으며, 국내외 유수기관들과 협력체재를 통하여 많은 동문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동문들의 교실에 대한 애정과 헌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제 의공학교실의 10년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그 속에는 작은 것이기는 하나 우리 전 교실원들의 노력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기억이 남겨져 있습니다. 앞으로 10년간의 의공학교실의 발자취를 통하여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한 지침서로 생각하고 새로 다시 탄생하는 마음으로 의공학교실의 밝은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서태석
동문 회고록

선지식을 스승삼고 선후를 존경하자
의공학교실이 설립된 이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렸습니다. 그동안 많은 문하생들이 배출되었고, 교실 또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축함과 동시에 그동안 교수님들의 각별하신 배려와 그 노고에 진심어린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회고와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소중한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1996년 11월 쌀쌀한 초겨울 어느 날 나는 세분의 교수님을 뵈었습니다. 신경섭, 서태석, 그리고 최보영 교수님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가슴 설레는 호기심, 막연한 자신감으로 학문이라고 하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나의 각오는 비장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아무것도 없는 텅 비어 있는 의공학 연구실에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서태석 교수님께서 주신 단 한권의 책, Visual C++ 2.0 사용자 설명서. 남기신 말씀은 "공부해라". 그것이 현재 나의 사업밑천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화려한 대학원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1997년 산과 들에 눈이 녹을 무렵 나의 단짝 김태가 나의 옆자리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형구 교수님께서 의공학교실로 출근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에 의료원 건물 옆에 공사장 인부들을 위한 허름한 식당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곳은 의료원에 계신 많은 분들의 조그만 보금자리였고, 저녁이면 많은 분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지도교수이셨던 서태석 교수님께서는 그곳에서 가끔씩 소주 한잔에 젊은 날의 회고담을 들러 주셨습니다. 한 해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새로운 문하생들이 찾아들었고, 승훈이, 기식이, 제웅이, 그리고 백현만. 우리는 축구팀을 결성하였고, 축구화와 축구복도 마련하였으며, 축구는 우리에게 커다란 삶의 활력소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형구 교수님과의 박사과정에서의 학문적 열의는 사업적 도전으로 이어졌고, 그 꿈을 이루고자 인고의 날을 보낸 지 수년이 되었습니다. 학문과 삶에 대하여 나 자신을 유심히 통찰하고 성숙을 위한 금쪽같은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인과는 분명하고, 뿌린 대로 거두며,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이 난다고 합니다. 교수님들의 정성어린 10년간의 농사가 다음 10년을 위한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란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그러한 토대에서 앞으로 수많은 유능한 문하생들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리라 확신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문하생들이 가슴에 지녀야 할 것은 "선지식을 스승 삼고 선후를 존경한다"는 진리탐구의 기본자세와 "자아성찰"이라 봅니다. 내면적 성숙이야 말로 참된 지식인과 지도자의 기본적인 소양일 것입니다. 또한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사람은 생기가 돌고, 그것은 최고의 에너지원입니다. 자신의 서원을 확립하고 즐길 줄 아는 지혜로운 지식인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의공학교실의 10주년을 맞이하여 신경섭 교수님,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그리고 이형구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된 가르침 감사합니다. 함께했던 우리 문하생들에게도 감사드리며 가톨릭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김성현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주년을 맞으며..
1997년 3월 몇 대의 컴퓨터와 책상, 4명의 교수님들 (신경섭 교수님,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과 저를 포함한 2명의 학생으로 시작된 가톨릭의공학교실의 10 주년을 맞이하며 많은 지난 기억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어느새 10년이 지나갔는지 모르게 정말 유수같이 흘러간 지난 10년이었습니다. 10년 전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항상 일손이 모자라 4분의 교수님들이 직접 손수 책상, 책장과 집기 등을 나르고 정리하던 일이 가장 머릿속에 남습니다. 또한 교실 칸막이공사를 하던 일, 아시아 최초 3T 자기공명영상장비를 포함하여 각종 연구장비와 기기들이 도입될 때마다 세심하게 점검하며 그 와중에도 연구와 수업에 열정을 쏟으시던 지난 시간들 또한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당시 의공학교실과 의공학연구실은 가톨릭의과학연구원내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기에, 우리 교실과 연구실의 불이 꺼지면 의과학연구원 건물의 유리창 불빛이 사라지곤 했습니다. 매일 밤 늦게까지 일하다 의과학연구원 건물의 유리창 불빛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집에 가는 순간이 가장 보람차고 기분 좋은 순간들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무에서 유를 창조했듯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교실을 교수님들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일에서 최선을 다하는 많은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의 땀과 노력으로 하나씩 일구어 오늘날의 의공학교실이 우뚝 서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졸업 후 멀리서 가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홈페이지를 통해 교실 근황이나 사진 속 후배들의 모습에서 교실의 번창함을 보며 뿌듯했습니다. 또한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역할을 다하고 있는 많은 졸업생들의 뒤엔 10년이란 나이테를 자랑하는 깊은 뿌리를 지닌 나무인 가톨릭의공학교실이 든든하게 자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제 10주년이라는 뜻 깊은 행사를 맞아 가톨릭의공학교실이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계기로 삼고 항상 노력하는 모습으로 더 큰 결실을 맺으리라 확신합니다.
김태

가톨릭의공학교실 10주년을 축하하며...
우선 길다면 길수 있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10년의 세월동안 우리 의공학교실을 위해 헌신하신 여러 교수님들과 재학생 및 졸업생 동문들께 감사와 축하의 말을 드립니다. 수 십년의 역사를 가진 여러 학교의 교실도 많이 있지만 우리 의공학교실은 비록 다른 기관보다는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타기관의 어떤 연구실 못지않게 의공학, 의학물리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은 방사선치료, 자기공명영상, 그리고 디지털 영상 분야에서 국내의 여러 기관과 협력해서 여러 연구활동을 해왔고 해외유수의 대학과 연구 활동 및 학생 교류를 통하여 지난 10년 동안 최고와 최선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국내외에 적극적인 학술 및 연구활동을 통해 많은 업적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유기적인 틀을 발전시키고, 정진한다면 앞으로 그 이상의 결과가 나오리라 믿습니다. 저도 비록 주경야독하며 학업을 하느라 많은 공헌을 의공학교실에 하지는 못하였으나 언제나 교수님들과 여러 학우들이 격려와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에 힘들지 않게 학위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교수님들과 동료와 함께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한층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런 의공학교실에 일원으로 존재하는 것이 자랑스럽고, 언제나 교실의 명성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진감래 (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듯이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격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초대 주임교수님이신 신경섭 교수님을 비롯하여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 허순녕 박사님과 여러 학과목 교수님들께 10주년을 맞이하여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그리고 선후배 재학생 동문들에게도 지금까지의 노고에 감사와 축하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의공학, 의학물리 분양의 기수로써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의공학교실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김연래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의 학문적 건승을 기원하며...
겨울이 길기로 유명한 이곳 미네소타에서도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요즘, 저녁 무렵 아들들과 같이 아파트 공터에서 야구를 하다보면 부쩍이나 커버린 아이들을 보며 새삼스레 제가 미네소타에 와서 지낸 지난 6년이 짧은 시간이 아니었음을 실감하곤 합니다. 비록 이곳 미네소타대학에 유학을 와서 우여곡절 끝에 처음 유학 올 당시 하고자했던 방사선 치료 물리학이 아닌 자기공명영상 물리학 관련으로 작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Center for Magnetic Resonance Research에서 포스트닥 연구원으로 계속 일하고 있지만, 제가 이 의학물리학 분야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것은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이었습니다. 지도교수이셨던 서태석 교수님의 배려 하에 2000년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 후, 1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여러 교수님들의 강의를 들으며 의물리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배웠던 여러 가지 지식들은 유학을 와서 학위과정을 보내며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고 새삼 그때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의공학교실에 같이 몸담았던 동료와 후배들과의 만남은 연구의 동반자를 넘어서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가 되는 그런 인연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중 몇몇 사람들은 국내에서 국외에서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격려를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의공학교실에 감사하는 것은 학문적인 도움을 넘어선 교수님들의 인간적인 배려이십니다. 사실 엄밀히 말해 저는 의공학교실 졸업생이 아니기 때문에 이 글을 쓸 자격이 없습니다만, 의공학교실의 졸업생들과 다름없이 한 식구로 대해주시는 최보영 교수님의 배려덕분에 이렇게 10주년 회고록에 글을 올릴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외국학회에서 뵐 때나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따뜻하게 한 식구처럼 대해 주시고 학문적으로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교수님들을 볼 때마다 저는 사실 참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듭니다. 의공학교실에 들어갔을 당시 여러 가지로 많은 배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제 개인의 불안정했던 인생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의공학교실에서 학위를 마치지 않고 유학을 떠나오게 된 것이 의공학교실과 교수님들께 폐를 끼친 것만 같아 두고두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짐을 벗는 길은 앞으로 더욱 열정을 가지고 연구에 매진해 국내와 국외에서 활동 중인 다른 훌륭한 의공학교실 출신 분들과 함께 의공학교실 출신으로서 학계와 인류에 진정한 보탬이 되는, 학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 겨울동안 연구소에서 밤늦게 퇴근하며 차안에서 불 꺼진 거리를 지날 때 가끔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그리워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가장 마음 시리게 하는 소중한 추억들 중의 여러 부분이 의공학교실원들과 보냈던 그 시간들입니다. 의공학교실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 학문적으로 더욱 건승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이 되기를 멀리서나마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박장연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이여 영원히 꿈꾸어라!"
무한가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의 10주년 기념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국내 우수연구기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그 동안 많은 수고와 노고로 불철주야 노력하셨던 교수님들의 지난날들의 행보들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더불어서 출중하신 교수님들의 지도 및 편달 하에 의공학교실 박사1호 입학 및 졸업을 한 졸업생으로서 이번 10주년 기념행사는 저 자신에게 있어서도 남다른 기쁨과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일인 듯싶습니다. 생명현상을 물리학적이고 실용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던 저에게 1997년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교실 신설과 우수한 연구진 인프라는 아주 흥미로운 사건이었고 제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최보영 교수님과의 첫 번째 만남의 인연을 잊을 수 없습니다. 아주 신사적이며 그러면서도 따뜻한 인품을 느끼게 하셨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학위과정을 하는 동안에도 최보영 교수님으로 부터 자기공명현상을 이용한 환자들의 해부영상 및 분광정보를 획득하는 진단방법들을 습득하였고 또한 직간접적으로 많은 환자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던 아주 살아 숨 쉬는 교육의 터전이었음을 지금도 자부하고 있습니다. 또한 잊을 수 없는 좋은 경험은 서태석 교수님께서 강의하셨던 "방사선치료물리학 이론 및 실습" 과목 이었습니다. 체내 깊숙이 위치한 악성종양 등을 집중치료하기위해 첨단장비들을 이용해 치료 전 정확한 입체모의치료계획, 정밀한 방사선량 계산, 그리고 대학병원에서의 치료실습 등 퇴색해졌던 기억들이 이 순간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특히, 서태석 교수님의 E-mail 아이디, suhsanta가 이야기 해 주듯 항상 만나면 밝게 미소 짓는 얼굴 표정은 으뜸 중에 최고의 으뜸이라 생각하곤 했었습니다. 영상처리 과목을 맡으셨지만 정말 형님 같이 친근하셨던 이형구 교수님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엑스레이 디텍터 개발에 천부적인 능력과 더불어서 유창한 영어회화실력을 소유한 교수님, 이교수님! 다른 것은 몰라도 영어실력만큼은 닮고 싶습니다. 그 외에도 초창기 대학원생 멤버들 함께 동고동락했던 김태, 김성현, 하승훈, 태기식, 윤제웅, 이정애, 박현미, 신동훈, 박정훈, 추명자 등 그들의 노고와 기여를 이 시간 또한 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끝으로 존경하는 후배님들 올 10주년을 기점으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이 국내에서 명실상부하게 더욱 성장하는 원년의 한 해가 되도록 훌륭하신 교수님들 지도와 편달 하에 많은 업적들이 성취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공학교실 파이팅! 의공학교실이여 영원히 꿈꾸어라!"
백현만

희 망 제 작 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에 대한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됩니다. 그러한 새로움에 설레던 마음도 때로는 타인과 자기 자신과의 경쟁에 지치고, 원하던 성과를 얻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의 모습에 대한 회의로 지쳐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힘든 현실 속에서 우리가 견뎌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저는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석사과정을 마치고 삼성에 입사하여 직장 생활하며 입사 초기에 가졌던 꿈과 미래의 제 모습이 내부적 요인이든 외부적 요인에서든지 뜻과 같이 풀리지 않았던 답보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힘든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이 되어준 곳이 바로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이었습니다. 99년 초 처음 교실을 방문하여 서태석 교수님을 뵙고 인사드릴 때만 해도 교실이 만들어 진지 2년도 채 안된 시점이라 체계적으로 완성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에겐 새로운 희망이 되었고, 그 해 겨울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6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공부라 힘든 과정도 있었고,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밖에서 관념적으로 밝게만 생각했던 전공분야의 여러 현실적인 면을 접하며 고민도 많았으며, 부족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와 여러 상념들에 힘들어 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힘들었던 과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수 있었던 건 함께 공부하고 생활했던 교실원 모든 분들의 도움과 서로에 대한 관심 덕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항상 모든 일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로 열심을 다하도록 격려해주신 교수님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희망을 갖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으며, 같이 부대끼면서 함께 생활했던 교실원들 간의 푸근한 정은 사람들 간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10주년이라는 새로운 이정표에서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의 지나온 발자취를 돌아볼 때 수많은 훌륭한 업적들이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빛나고 소중한 것은 교실원들에게 새로운 길과 희망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0주년을 기념하여 두서없이 올리는 이 글이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교실원들에게 힘든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항상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고, 다시 한 번 희망을 찾을 수 있게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며, 아울러 교실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고 인간적인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자기 역할을 찾아 노력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 번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주년을 축하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학생들과 연구원들의 새로운 희망제작소로 계속적인 발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송주영

의공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접하며...
의공학이라는 분야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방황의 시기를 걷던 대학교 시절, 서태석 교수님께서 원자력의 미래에 대하여 발표를 하셨던 원자핵공학과 학과 설명회를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공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에 원자핵공학과를 입학하고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조차 없던 그때, 교수님께서는 의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말씀하여 주셨고, 저는 원자핵공학을 계속할 것인지,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앞두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저는 가톨릭대학교에서 의공학과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무작정 윤제웅 선배와 서태석 교수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게도 의공학과에 입학을 하였고,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된 저는 과연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조차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태석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의 따뜻한 배려와 의욕적이며 다정했던 선배들을 만남으로써 이 분야에서 어떠한 것을 해야 할지를 조금씩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황하던 대학을 마친 후, 그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대학원에서도 많은 방황을 하였지만, 의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한다는 설레임, 그리고 내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엇인가를 선택하여 여기까지 왔다는 그러한 책임감으로 인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년이라는 길지 않았던, 의공학이라는 분야와의 조우는 저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보건물리를 전공하고 있지만,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배웠던 의공학 분야의 많은 것들이 제 분야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으며, 원자력 분야에서도 저를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경력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인생을 살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인간다운 사람들과의 인맥을 만들었다는 것을 가장 기쁘게 생각합니다. 제 모교이자 첫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해준 의공학과가 벌써 10년이란 세월을 거치면서 의공학의 메카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상당히 뿌듯한 일입니다. 많은 교수님들의 노고와 훌륭한 선?후배님들께서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듭 가톨릭의공학교실 10년을 축하하며,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의공학 분야의 최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 동 훈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주년을 축하하며...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 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교실의 변천사를 보면 이 말이 무색할 정도로 무수한 변화와 발전을 이루어 왔던 것 같습니다. 10년 전 척박한 의료분야이라는 맹지에 새로운 터를 만들고 의공학, 의학물리학이라는 기둥을 세워 집을 짓고 사방으로 길을 내신 선구자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우리 교실이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의학물리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해외 유수의 많은 대학과 공동 연구를 수행하며, 의료영상학 진단분야는 물론 최첨단 방사선 치료분야를 선도해 나갈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온 우리 가톨릭의공학교실을 생각하면 변화의 주역은 아닐 지라도 그룹의 일원만으로도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며 의학물리전문인을 양성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해 오신 신경섭 명예교수님,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 허순녕 박사님께 축하의 말씀과 더불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교수님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현명한 지도가 있었기에 현재의 위치에서 나마 의학물리학자로서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나온 석사과정은 만학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함께 고민하고 함께 웃을 수 있었던 동료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너무나도 값진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좋은 논문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함께 했던 시간은 아직도 가슴속에 강한 열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지금은 박사학위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그때의 열정이 조금이라도 수그러들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제 자신을 돌아보는 자성의 목소리가 마음 한 켠에서 메아리를 칩니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물리학자의 실수는 고귀한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도 있기에 의학물리학자는 사소한 결정의 순간일지라도 숙고와 신중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학업과 연구에 정진해 오신 많은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따라 언제 어디에 있던지 양심과 노력을 바탕위에 학식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가톨릭의공학교실원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언제나 한결 같은 소나무와 같이, 함께 비바람을 이겨내는 버팀목으로서의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가톨릭의공학교실의 1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미래를 선도하는 의공학, 의학물리학의 선도자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많은 교수님들과 동료선후배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정우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대학원생활을 되돌아보며...
사람들은 가끔씩 '전화위복'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한다. 때로는 그 단어가 적절하게 들어맞기도 한다. 특히 과거 어느 시점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을 뒷날 되새겨 보면서 결과적으로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한 경우는 무척 운이 좋은 경우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운은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까. 2000년 11월, 대학졸업을 앞두고 있던 나는 동일학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일이 뒤틀리면서 특별전형에 합격하고도 입학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교실이라는 곳을 먼저 와 수학 중이던 동기를 통해 알게 되었고 호기심에 연구실을 방문했던 날, 나는 이곳으로 진학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나 입학부터 쉽지 않았다. 특별전형 면접을 보러왔던 날, 나 이외에도 여러 명이 함께 면접을 보았는데 나만 특별전형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일반전형을 통해 석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다. 사실 같이 석사과정에 입학했던 동기들(진호상, 김상로, 오승종)에 비하면 나는 미래에 대한 목표나 열정이 부족했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은 모두 석사 후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연구실에 나오면서 전공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나 역시 그 스터디에 동참하기는 했지만 그들에 비해 자신감은 결여되어 있는 편이었다. 그 뒤로 석사 과정 2년 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공과 관련한 지식들도 쌓여가면서 의학물리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비로소 내가 무엇을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대로 박사과정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이 역시 지금 생각하면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히려 박사과정을 통해 의학물리라는 바다에서 마음대로 헤엄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신 교수님들의 도움도 컸다. 솔직히 다른 학생들에 비해 내가 더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두 번에 걸친 플로리다 대학으로의 연수, 캐나다 NRC에서의 BEAM code 교육, 기타 해외 학회 및 워크샵 참석 등은 안목을 넓히고 의학물리 분야의 동향 및 전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도 활발히 진행할 수 있었다. 다만 유감스러운 것은 그 결과를 착실히 정리하지 못하여 내세울만한 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박사 과정도 늦어지고 있지만 이제는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조만간 멋지게 마무리하리라. 지난 6년이 넘는 시간을 되돌아보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때 결정을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전화위복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노력이 수반되어야 가치가 더해지겠지. 아울러 수많은 기억들과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 하지만 7년 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었다고 생각된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힘이 되어 준 교실원들, 많이 도와주셨던 서태석 교수님과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 신경섭 교수님. 그리고 그 밖의 많은 분들. 그래서 영원히 이곳을 잊지 못하게 될 것이고 언젠가 몸은 떠나더라도 마음은 계속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제 1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앞으로 50년, 100년, 그 이후에도 계속 발전할 수 있는 교실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나의 역할도 있겠지만..........
정광호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 Stay foolish.” (“계속 갈망하라. 계속 우직하라.”) 이 말은 Apple의 창업자이자 CEO인 Steve Jobs가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축사에서 사회 초년생들에게 던진 마지막 말입니다.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해라. 하지만 꼭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라’라는 아버님의 어린 시절 가르침 속에서 자란 저는 많은 한국 대학생들이 그렇듯이 대학 입시란 문턱을 넘으면서 목표를 상실한 채 타성에 젖어 학교생활을 영위해 나갔습니다.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 속에 방황하며 보낸 1998년, 우연히 군대에서 의공학교실 동문인 신동훈 군을 통해 접한 의공학이란 학문은 저에게는 아버님의 어린 시절 가르침을 떠올리는 계기가 된 동시에 꿈을 꾸고 갈망할 수 있는 목표가 되었습니다. 특히 전공으로 의학물리를 택할 때 모든 사람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방사선이 사람을 치료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매력이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발을 담그던 2000년, 설레임으로 한편으론 두려움으로 서태석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척박한 토양에 새싹을 틔우는 것이 인고의 노력을 요구하듯이 그 당시 의공학교실 교수님들께서는 모진 토양 위에 물과 거름을 끊임없이 주고 또 주고 계셨습니다. 몇 번을 이사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과 신학문에 대한 인식부족 속에서도 꿈을 꿀 수 있었기에 동기인 광호, 상노, 승종이와 함께 많은 밤을 지새웠고,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지금까지 계속 우직하려 노력했습니다. 의공학교실에서의 배움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여물지 않아 너무나도 부족한 제 자신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은 부족한 열정으로 충만했었고, 그때의 부족함이 오늘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저는 지금도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아직도 갈망하고 있냐고, 아직도 꿈꾸고 있냐고.’ 제 대답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그렇다’라고. 그 꿈을 가지게 해준 의공학교실을 만드시고 일구어주신 교수님들, 제 옆에서 항상 도움을 주고 마음의 채찍질이 되던 선?후배님들, 그리고 지금 제자리에서 묵묵히 가톨릭대 의공학교실의 미래를 다지며 최선을 다하고 있을 현 교실원들에게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주년을 맞이하여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0년의 세월이 많은 것을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많은 업적으로 쌓아온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동문으로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난 10년 단단한 초석을 다진 의공학교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은 모든 일이 한국 최초이자 최고라고 확신합니다. 끝으로 그 의공학교실에게 처음에 했던 그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진 호 상

From 무(無), To 유(有)
먼저 CMC-BME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의 10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졸업을 하고, 임상수련을 하고 현장에 나온 지가 어제와 같은데..., 항상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시간은 물 흐르듯 소리 없이 잔잔히 흘러 많은 발자취를 남긴다는 것을 새삼 다시 한번 깨우침을 가집니다. 제가 머물렀던 2년 반이라는 시간도 돌아보니, 그 당시는 나날이 바쁘고, 빡빡한 일정들이었고, 늘 급했던 것 같은데, 참으로 짧았다는 생각과 CMC-BME의 작은 부분으로서의 돌다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기쁩니다. 2002년 겨울, 많은 망설임으로 부산으로 내려가려는 저를 잡아서, 가르침을 주시고, 스승으로서 의학물리 학문의 길을 안내해 주셨던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 너무도 감사드리고, 축하드립니다. 처음 입학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의학물리분야에 대하여 교실 한 켠에서 무턱대고 제본한 Khan 책만을 보고, 주영이형, 진범이형, 광호형, 승종이에게 ‘DVH가 뭡니까 ?, 커마가 뭡니까?, 전자평형이..., MRI가 무슨 약자 입니까?’ 하고 물어 볼 때만 해도 참 막막하고,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어리둥절한 서울 지하철역을 찾던 촌놈에게, CMC-BME는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국내 의학물리 분야에 있어,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커서 무엇을 해야 되고, 어떻게 자라야 하는가를 보여준 곳이었으며, 두 번의 유럽과 미국학회 참석, 클리블랜드의 CASE-WESTERN Clinical Site의 방문경험은 어디서도 가질 수 없는 큰 경험이었으며, 유럽에 학문의 기초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넓은 메이저리그 구장과도 같은 의학물리 분야를 직접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것은 걸음마를 배우는 제게 직접 꿈을 가지게 해준 기회였습니다. 아마도, 제가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이 CMC-BME의 교수님들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품고 계시던 마인드가 아닌가 싶고, 그것을 CMC-BME 교실원들이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들이 아무것도 없었던 어려운 환경에서도 많은 국가 프로젝트와 연구실적 등을 이루었고, 의학물리 분야에서 국내외산?학?연을 연결하는 메카로서, 현재의 10년이라는 아름답고 고귀한 발자취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CMC-BME의 모든 구성원들이 안에서나 밖에서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천이라 믿고, 늘 계속 국내외 어느 그룹과도 견줄 수 있는 아니 앞서 나갈 수 있는 시간의 발자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며, 끝으로 CMC-BME의 10주년을 뜨겁게 가슴으로부터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최 경 식

그리운 세월을 회상하며...
그리운 세월을 회상하며... 1998년, 의학물리학이라는 학문에 뜻을 두고 이화여자대학교 물리학과 석사과정을 입학하면서 동시에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여 1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졸업생 추명자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화여자대학교 졸업생이지만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에서 보냈던 학생으로의 2년 반, 연구원으로의 2년 반을 지낸 시간은 저에게는 흐뭇한 추억이자 아련한 그리움이랍니다. 1998년 2월 가톨릭의과학연구원에 위치한 자기공명영상실과 생체의공학연구소에서 신경섭 교수님, 서태석 교수님, 최보영 교수님, 이형구 교수님을 찾아뵐 때가 아련합니다. 교수님 네 분, 석사 1년차 김성현, 김태 선배님, 3월부터 석사과정 시작할 친구들이 서너 명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연구소는 막 시작하는 이들의 열정과 설레임이 느껴졌었답니다. 특히 지하 1층에 자리한 자기공명영상연구실의 대학원 학생들, 함께 연구하는 연구원들,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3T MRI는 또한 얼마나 저를 설레이게 하고 저에게 큰 기대감을 가져다 주었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그 때의 설레임이 저를 흐뭇하게 미소 짓게 한답니다. 10년 전, 학생들끼리 10년 후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가톨릭의공학교실은 또 어떤 모습일까?'하는 주제로 수다를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벌써 이렇게 가톨릭의공학교실이 10년이 되어 교수님들, 선후배님들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학부 4년을 마치고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저의 손을 잡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준 의공학교실의 교수님들, 선후배님들과의 5년은 힘든 시간이기도 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저는 의학물리학을 계속해서 공부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가톨릭의공학교실에서의 5년이 결코 헛된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배웠던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제 머릿속에서 지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하는 일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공학교실의 교수님들께서 저에게 주신 배려와 사랑, 선배님들이 아끼지 않고 보내주신 믿음, 동기들, 후배님들과의 끈끈한 우정이 저에게는 삶의 지혜가 되고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의공학교실 10주년 축하드리고, 발전을 기원합니다.
추명자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년을 돌아보며...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10년을 돌아보며... 의공학이라는 학문을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후 취업과 진학의 결정에 있어 1998년 즈음하여 때마침 새롭고 진취적인 출발을 한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에 입학을 결정한 것은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이나 현명한 선택이었으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음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 의공학 발전과 의료영상 및 치료기기 발전의 개척자로 나서신 훌륭하신 교수님들과 타 대학 출신들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의 대학원 선배 후배들과 같이 2년이라는 기간은 인생에서 보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연구를 통해 많은 보람과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의공학교실을 만들기 위하여 땀 흘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의 대학원생으로서 학문 분야 뿐 아니라 어떠한 생활태도로 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회를 살아가야하며 목표를 위해 끝까지 인내하고 노력하는 방법 등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배운 것 같습니다. “항상 준비하는 자에겐 반드시 기회는 온다”라는 말처럼 항상 자신을 가꾸며 미래를 준비하는 여러 모습을 배울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10년 전 졸업 후 첫 근무지였던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에서의 경험은 제 인생에서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 항상 자부심을 가지게 합니다. 학위 과정 중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매우 고민에 빠져 힘들어할 때 무한한 꿈과 희망을 제시해 주셨던 교수님들과 아픔과 걱정을 같이 나누어주었던 많은 선후배 대학원생들이 있었기에 의공학이란 학문에 동참하고 노력하고 있는 현재의 나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앞으로의 삶의 목표를 발견하고 느끼게 해주었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의 개설 10년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하며 예전과 마찬가지로 더욱 더 발전된 모습의 교실로 성장되길 바라며 졸업생으로서 분명 최고의 의공학 학문을 이끌어나가는 메카로서 성장하리라 확신합니다. 다시 한번 본인 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인재로 자리 잡을 수 있게 키워주신 여러 교수님과 동문들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가톨릭의대 의공학교실 출신으로서의 긍지를 가지며 교실 발전에 힘쓸 수 있는 동문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을 약속드리며 개설 초기 모든 게 자리 잡히지 않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10년 그 이상의 발전을 이끌어 온 만큼 더욱더 발전된 교실로 성장할 수 있길 기원하며 후배 연구원들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태기식

폼 생 폼 사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교실을 졸업한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주년이 되었다니! 세월의 흐름은 자석의 세기만큼이나 강한 것 같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처음 접해본 거대한 자석의 위력은 제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해야 한다는 확신으로 만든 것은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과에 있었던 더 큰 자석이었습니다. MRI중에서도 RF coil이란 영역은 그때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알듯 말듯 그래서 졸업 후 회사에서나 유학 온 이후에도 아직도 씨름하고 있는 저에게 있어 커다란 벽이자 도전이라는 가치를 느끼게 하는 멋진 파트너입니다. 미천한 지식마저도 없이 그냥 MR이 좋아서 지원했던 가톨릭대학교 의공학과! 그리고 그때 최보영교수님과의 첫 만남 그리고, MRI를 왜 공부하냐는 첫 질문. 저의 대답은 “자석이 커서 폼 나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로 그런 대답을 했을 까 하고 웃음만 나옵니다. 지금도 MR공부하고 있지만 그때 시절의 용기를 다시 가진 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2년 동안 의공학교실은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돌게 해준 소중한 저의 모교입니다. 또, 현재까지 MR을 직업으로 또 다시 학생으로 MRI의 RF part 한 분야만 줄기차게 연구할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시고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힘이 되는 조언을 해주신 최보영교수님이하 가톨릭대학교 교수님들께 지면상이지만 감사드립니다. 1학년 때 RF coil공부하라고 교수님께서 주셨던 해외논문들과 RF coil만들다가 실험실 바닥에 MR용 pad를 옷 삼아 누워 자면서 기록해 두었던 실험노트들은 지금껏 마치 RF coil의 역사를 공부하듯 저에게 있어 기름진 토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졸업 이후 그 논문들 속 제 상상의 저자들과 현실에서 만나고 그들과 의견을 공유 했을 때의 감격은 뭐라 말로 표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꿈을 실현시켜준 의공학교실을 지금도 묵묵히 지키고 더 큰 발전을 위해 노력하시는 교수님들, 그리고 현재도 교실에서 미래를 위해 의공학 공부를 하고 있는 후배님들에게 너무나 고맙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멋지게 공부하고 힘내시라고 응원합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또 한 번의 새로운 의공학교실 10년을 기대하겠습니다.
하승훈